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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글

그래서 그 작은 별은 어디로 갔나요?

분명 작년 이맘때쯤 썼고, 포스팅도 했던 글인데 어따 날려먹었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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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학교에서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미술숙제로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그림 - SF 그림을 제출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하얀 도화지 위에 노오란 크레파스로 군데 군데 조그마한 동그라미와 별들을 그리고선, 도화지 중앙에는 불꽃을 힘차게 뿜어내고 있는 로케트를 그리곤 하였다. 어디로 날아가는 거였을까? 목적지는 어디었을까? 왜 날아가는 걸까? 그리곤 파레트에 검은 물감을 짜서 물을 듬뿍 섞고선 신경질적으로 도화지 위에 붓질을 헤대었다. 그 큰 도화지에 꼼꼼히 색칠을 한다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보면 네모나한 도화지 한 귀퉁이에는 항상, 꽤 신경을 써서 그린 어떠한 행성 위로 우주복을 입은 인간이 있었다. 왜 거기에 있는거야? 당신, 어디서 왔어?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에는 둥글둥글하니 초록색과 푸른색이 알록달록 섞여있는, 고런 작은 별을 그렸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왜 그랬던 것일까? 힘차게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크고 우람한 우주선에 비하면, 아름답게 치장된 행성에 경이로운 첫 발을 내딛은 우주인에 비하면, 그들이 떠나왔을 바로 그 작은 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걸까. 그 별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림을 그리던 나는 어느새 십년이란 시간이 흘러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TV는 어느 누구의 죽음과, 어느 누구의 기쁨과, 어느 누구의 슬픔을, 누구의 몫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이익에 대한 찬사와, 누구의 몫으로 돌아오는지 알 수 있는 손해에 대한 유감을, 십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을 시끄럽게 맥락도 없이 쏟아내기에 그저 바쁠 뿐이다. 아아, 시끄러.

 

이런 저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을 때면, 자주 사차원 아스트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몽환의 바다에서 고독한 항해도 즐긴다. 시원한 보름달이 밝게 빛날 때면, 고개를 들어 달빛의 상쾌함을 느끼며 시름을 잊는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연기자들의 외모에 대해서 떠들고, 대사 한마디에 웃고 또한 울고.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손짓과 움직임, 공의 궤적에 가슴을 졸이며 환호성을 지르고. 소설책들을 읽으며 또 하나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나 주인공이 되어 한바탕 활극을 펼치기도 한다. 조금은 바보같이 헤죽거리며 웃기도 하고, 격해진 감정을 참을 수 없어 화도 내고 울기도 하지만 그때만큼이라도, 잠시라도 다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뭘 잊는다는 거지?

 

일상의 변함없는 하루를 보내다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뒤숭숭해지는 마음에 한 숨을 내쉬어본다. 인공위성을 실은 로켓이 밤하늘을 가르며 외계로 탈출해가는 궤적을 바라보며 이유모를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아, 그래. 나는 이 땅을, 지구를 떠나고 싶은 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