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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글

거시기선언...(응?)


Freedom is freedom is freedom........

“너의 행위를 보편타당한 준칙으로서 행하라” 로 대표되는 칸트적 도덕법칙 또는 합리주의적 도덕법칙은 순수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각주:1] 도덕적으로 행하기 위해 우리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 정서들은 단지 장해물이다. 오직 이성만이 의지를 제약할 수 있으며 그 형식을 제공하고 우리를 진리와 자유로 이끌어간다.[각주:2] 이를 지젝은 그의 영화<300>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성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는 오직 가혹한 자기-규율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조지 부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인민에 의한 자치는 결국 자신에 대한 엄격한 통치에 의존한다.”[각주:3]

지젝과 부시의 언어는 표층수준과 또한 그 표현에 작동하고 있는 <힘으로서의 이성>은유[각주:4]에서는 동일하다. 이 은유는 서구 전통 도덕의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는 일종의 심층프레임이다. 이 동일한 은유를 지젝과 부시가 어떤 맥락을 통해 확장해 나가고 있느냐가 둘의 논지를 다르게 만드는 차이점이 된다.

지젝은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를 제국으로, 스파르타를 제국에 대항하는 제3세계적 입장해서 해석하여 자유를 위한 투쟁의 조건으로 이성적 자기-규율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부시는 악의 축과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제3세계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대응하기 위한 입장에서 자기-규율을 이야기한다. 혹자들은 이러한 부시의 말을 자유에 대한 해석이 어긋난다,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부시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러한 비판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 두 번째 연설에서 우리의 의무는, 내가 사용하는 낱말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보았던 역사에 의해 정의됩니다.”[각주:5]

결국 부시[각주:6]는 역사적 사건과 자국민들이 경험한 충격과 공포를 적절히 이용해 자유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현재 한국에서 이명박정권이 연평도와 해적을 통해 북한과 국가, 안보, 자유라는 개념을 다루는 일로 반복되고 있다. 사건들을 통하여 개념의 내적구조가 재구성되며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억압된 사실, 환상, 허위의식, 희화화 등으로 비판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거시기는 실재하며 변화한다.

자유를 비롯한 여럿의 담론개념들을 철학자-인문학자들은 견고히 바벨탑을 쌓아올리며 거시기를 정의하려 하지만, 사태는 그것만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을, 더 나아가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각주:7] 거시기는 거시기라는, 다른 거시기가 아닌 거시기라는 건 있을 수 없다. “나의 거시기는 그렇지 않아!” 해봤자 그건 당신의 거시기다. 보편적 이성과 형식으로서 자유와 윤리, 거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각주:8]




거짓말 사례

원형적 거짓말들은 다음 세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한다.[각주:9]

1. 화자는 그 진술이 거짓이라고 믿는다.

2. 화자는 청자를 속이려는 의도를 갖는다.

3. 그 진술은 사실상 거짓이다.

거짓말은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지 않으면 거짓말이 아니다. 더욱이 사람들은 1의 조건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3의 조건은 가장 덜 중요한 것으로 서열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요는 사람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판단할 때 ‘이것 아니면 저것’의 방식이 아니라 판단의 상대적 요소들을 고려한다는 것이며, 선의의 거짓말같은 경우는 거짓말에 부여된 일종의 가치판단 ‘거짓말은 나쁜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농담 역시 그 내용이 허황되고 거짓일지라도 그 자리에서 통용되고 분위기를 띄울수 있다면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의 거짓말 역시 비슷하다. 다른 나라의 해적납치에 관한 사례를 보면, 협상가를 동원하고 몸값을 제공할 것처럼 제스쳐를 취한 뒤 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또는 작전계획등과 같은 것들은 국가간 관계나 국익, 생명 등이라는 것이 걸린 상황에서 정부가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 역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 역시 쉽게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구출작전같은 경우 정부가 작전이 수행중이며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솔직히 발표를 한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같은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거짓말의 중심적-원형적 사례가 있고 비중심적-비원형적 사례가 존재한다. 그러한 원형과 비원형에 대한 판단은 그 일이 발생하는 맥락과 작동하는 과정들에 달려있다.[각주:10] 그 과정에서 어떻게 은유적으로 확장시키고 투사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개념구조와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해적들을 사살한 것에 찬성하는 사람이 북한인민은 죽여도 좋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떠돌이 고양이나 개를 심심풀이 장난으로 잔인하게 죽이는 것 역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너의 행위를 보편타당한 준칙으로서 행하라”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도덕적 당위와 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편적 법칙성은 오히려 유해할 수 있는 것이다. 도리어 물신주의적이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들고 분신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내용이 노동자위주라던가 혁명적 이어서가 아니며, 선험적이며 철학적인 판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분신이 보편타당한 준칙이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근로기준법의 문구들과 현실의 체험이 노동법의 상상적인 확장을 가능하게 한 것이며 전태일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던 프레임을 변화시킨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실이란 우리에 대한 진실을 구성하는 프레임이다. 여기 인문학을 떠도는 유령이 있다.- 프레임이라는 유령이.

  1. “윤리성의 원리들은 온전히 선험적으로, 일체의 경험적인 것에서 자유롭게, 단적으로 순수한 이성개념들 중에서 만날 수 있다.” ([윤리형이상학], 410) [본문으로]
  2. “욕구능력의 모든 대상과는 무관하게” ([윤리형이상학], 400) “그러한 의지를 객관적 법칙들에 맞게 결정하는 것은 강요이다” ([윤리형이상학], 413) [본문으로]
  3. 부시의 두 번째 취임연설 중 [본문으로]
  4. 마크존슨은 그의 저서 ([도덕적 상상력], 서광사)에서 전통적인 합리주의 이론에는 힘으로서의 이성이라는 은유가 담겨있다고 하며 그 강제적인 성격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ex) 의지는 자유롭게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은유적으로 인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성은 의지에 힘을 행사함으로써 행위를 지도한다 등. [본문으로]
  5. 그 역사란 911을 칭한다. [본문으로]
  6. 여기서 부시는 부시 행정부와 보수파 Think Tank를 지칭한다. 영어권에서는 워싱턴이 연방정부를 지칭하는 것과 같은 환유를 사용한다. [본문으로]
  7. 유명한 세금폭탄드립이나 최근 오세훈 시장의 공짜치즈드립은 이들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프레임을 이용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본문으로]
  8. 이것이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거시기는 실재한다. 거시기를 사고할 수 있는 원칙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적이며 역사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9. 이하 내용은 마크 존슨의 저서 ([도덕적 상상력], 서광사, 199-211)에 대한 내용의 정리이다. [본문으로]
  10. ([도덕적 상상력], 서광사, 206) [본문으로]